용서의 권능(골 1:4) - Power of Forgiveness(Col. 1:4)
2010년 3월 16일 PM 101 설교학 과제 : 이승선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우리의 삶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지혜롭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게 인생길을 돌아볼 필요도 없이, 오늘 하루만 돌아보아도 나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럽고 부끄러운 죄악들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숨 쉬며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피의 대가를 치른 용서
용서에는 손해와 대가가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피 값을 치르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용서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높은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죄 값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당시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계산되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의 하루 일당은 1데나리온으로 계산되었습니다(마 20:2). 한 사람이 1년 동안 돈을 전혀 쓰지 않고 매일 일하여 모을 수 있는 돈은 365데나리온입니다. 한 사람이 6천 데나리온, 즉 1달란트를 모으려면 약 17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 달란트를 모으려면 얼마나 일해야 할까요? 16만 4383년 동안 일해야 합니다. 그것도 이자를 뺀 원금만 따질 때의 경우입니다. 만 달란트는 우리가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우리가 용서받을 만하기 때문에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졌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대적했고 거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롬 5:10). 우리가 용서받을 만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
이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용서받은 우리에게 또한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 4:32).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기억하고 용서하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는 다만 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높은 수준의 용서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을 원천으로 할 때는 결코 이런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힘의 원천으로 할 때에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같이 더러운 죄인을 용서하셔서 생명을 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죄짓고 날마다 쓰러지는 우리 안에서 동행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 1:27).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능이 되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실 때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권능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용서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7:47). 우리가 오늘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다 다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알고 느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깊이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더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가 주님의 용서를 체험했을 때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능은 어떠한 지식이나 훈련에 있지 않고, 사랑과 용서에 있다고 느낍니다.

 

사도 바울은 앞장서서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용서받았을 때에 그는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여전히 긍휼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며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쟁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얄미워하지 않고 여전히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 자신이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깊이 있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고,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가를 알고 인식하는 만큼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용서하려고 노력하는데 있지 않고, 내가 이미 받은 용서가 어떤 것인가를 아는데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 변화된 것처럼,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메마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